금요일도 수만명 몰렸는데…아무도 '안전 매뉴얼' 꺼내지 않았다

입력 2022-10-30 18:12   수정 2022-10-31 00:53


“언제 터져도 터질 사고였어요. 그동안 운이 좋았을 뿐이고요.”

200여 명의 사상자를 낸 이태원 참사는 ‘예고된 인재’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매년 이태원 핼러윈 파티가 군중 수만 명이 밀집하는 위험 상황이 아슬아슬하게 반복됐는데도 어느 누구도 사고 가능성에 대비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1) 좁은 도로, 무질서한 행렬
이번 참사의 1차적인 원인은 이태원의 좁은 도로와 축제에 모인 인파의 성격에 있다는 분석이다. 사고가 일어난 곳(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173의 7)은 45m 길이, 4m 폭의 좁은 내리막길이다. 성인 5명이 한 번에 지나가기 힘들 정도의 폭이다. 이곳에 수백~수천 명(경찰 추산)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참사가 빚어졌다.

‘해밀턴 골목’으로도 불리는 이 골목의 앞뒤는 이태원 상권 내 인파가 가장 많이 몰리는 지점이라는 게 화근이 됐다. 골목과 이태원 대로변이 맞닿은 지점에는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는 이태원역 1번 출구가 있고, 뒤쪽 세계음식거리로 통하는 곳에는 사람이 가장 붐비는 술집이 밀집해 있다. 한 안전사고 전문가는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집회, 시위대와 달리 핼러윈 파티에 모인 인파의 경우 유흥·귀가·행선지 등 목적에 따라 진행 방향, 보행 속도가 다 달라 압사 사고가 나기 쉽다”고 했다.
(2) “주최 측 없다”…행정기관 “책임 없다”
행사를 통제할 주최 측이 없었다는 것도 사고를 키웠다. 가령 지난 8일 열린 ‘한화와 함께하는 서울세계불꽃축제’는 서울 전역에서 105만 명이 모였지만 별다른 사고 없이 행사를 마칠 수 있었다. 당시 주최 측 한화가 행정당국과 소통하며 사전 대비에 나섰기 때문이다.

반면 이번 참사에선 행정기관 어느 누구도 먼저 사전 대응에 나서지 않았다. 주최 측이 없는 행사는 적용할 매뉴얼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태원 일대를 관할하는 용산구는 행정안전부 지침인 ‘2021 지역축제장 안전관리 매뉴얼’을 가동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도 ‘책임’은 없다는 입장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경찰이 안전 관리를 하는 경우는 시위 신고가 들어오거나 행사 주최 측이 요청할 때뿐”이라고 설명했다. 열차 무정차 통과 등 간접적으로 인파를 조절할 수 있었던 서울시도 “특별한 위험 요소가 감지되지 않아 특별한 사전 대응은 없었다”고 밝혔다.

문현철 숭실대 재난안전학과 교수는 “행정기관이 각자의 영역에서만 머물면서 규정을 따지며 움직이는 행태는 행정편의주의”라고 비판했다.
(3) ‘시위 막느라’…줄어든 경찰
그나마 경찰이 해당 지역에 일부 인원을 보냈지만 체계가 없었고 턱없이 적은 인원이 나섰다는 비판도 나온다. 경찰은 이번 핼러윈 파티에 대비해 이태원 전역에 약 200명의 인력을 배치했다. 수만 명이 몰리는 행사를 관리하기에는 적은 인원이라는 지적이다. 이는 지난해 핼러윈 파티 때 방역 관련 순찰을 위해 배치됐던 800명에 비하면 매우 적은 수준이다. 더욱이 이번에 배치된 200명 중 인파 안전 관리만 책임지기 위해 나온 인력은 ‘0’명이었다.

이 상황을 심화시킨 데는 경찰 인력 분산이 한몫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압사 사고가 있었던 29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는 자유통일당 등 보수단체 1만여 명이 ‘자유통일을 위한 천만 서명 국민대회’를 열었다. 비슷한 시간 인근에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 한국노동조합총연맹 공공부문 공동대책위원회가 주최하는 5만 명 규모 집회도 열렸다. 한편 전날인 28일에도 많은 인파가 몰렸던 만큼 이날 사고를 예측할 수 있었음에도 경찰이 인력을 제대로 배치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4) 꽉 막힌 도로, 놓쳐버린 ‘골든타임’
이태원 대로가 꽉 막히면서 구급차들의 발목이 묶인 것도 사고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시민들까지 나서서 심폐소생술(CPR)을 하는 등 위급 상황이 연출됐다. 당시 사고 현장에 있었던 김모씨(29)는 “구급대원 한 명이 서너 명을 번갈아 가며 CPR을 할 정도로 사람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구민기 기자 koo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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